진표율사

진표율사이야기1

통일 신라시대의 고승. 한평생 불도에 매진하여 많은 중생들에게 불법을 전하였으며 미륵불의 강림을 예언하고 수많은 기행이적을 남겼다. 성덕왕(聖德王) 때에 전라도 전주 벽골군 도나산촌 대정리(壁骨郡 都那山村 大井里, 현재의 김제군 만경면 대정리)에서 출생하였다. 부친 진내말(眞乃末)은 어부였고 모친은 길보랑(吉寶娘)인데, 태어날 때에 얼굴이 부처의 상(相)과 닮아서 동네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 천부적으로 총명하여 세 살 때에 부친이 보는 앞에서 불경을 읽을 정도였다.

율사가 11세 되던 해에 동네 아이들과 같이 산에 놀러가서 개구리를 열 마리 가량 잡아 작대기에 꿰어 개울 물속에 담가 두고는 그만 잊어버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듬해에 다시 산으로 놀러가서 보니 지난 해 잡아 두었던 개구리들이 죽지 않고 울고 있었다. 이에 율사는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그날부터 생사의 문제를 비롯한 인생의 본질적인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부친에게 출가할 뜻을 밝혀 허락을 얻어내고는 12세 때에 드디어 험난한 구도의 길을 떠났다.

율사는 근처에 있는 금산사(金山寺)를 찾아가서 불심이 깊은 순제법사(順濟法師)를 스승으로 모시고 열심히 불도를 닦기 시작했다. 스승인 순제법사에게 진표(眞表)라는 법명(法名)을 받았다. 율사는 스승에게 사미계법을 배웠으며, 또한 『공양차제비법(供養次第秘法)』과 『점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經)』이라는 책을 받을 때 스승으로부터 수업을 열심히 하여 진실한 중생구제의 법을 세상에 펼 것을 부탁받았다. 스승은 유달리 자질이 뛰어난 율사에게 “너는 내가 주는 두 개의 경을 열심히 공부해서 그 속뜻을 깨달은 후에 미륵불의 성전에 가서 그분들의 계법(戒法)을 받아 세상에 널리 펴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율사는 그길로 스승에게 하직인사를 드리고 물러나서 명산대찰(名山大刹)을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나 불도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수도하기에 전념하였다. 어느덧 율사의 나이 27세가 되니 돌아다니기를 중단하고 혼자 조용한 곳에서 수도를 하기 위해 보안현(保安縣 : 현재의 부안) 변산에 있는 부사의방(不思議房)에 들어가 미륵불(彌勒佛)을 친견하기 위해 지극정성으로 도를 구하였다.

율사는 3년 동안 정성을 들여 수도하였으나 여전히 미륵불의 현신을 볼 수 없었다. 이에 실망을 금치 못하여 스스로 죽을 것을 결심하고 근처의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그런데 율사가 땅에 떨어지려는 찰나 청의동자가 홀연히 나타나 그를 가볍게 받아서 다시 절벽 위에 올려놓고 사라져 버렸다. 이에 큰 용기를 얻은 율사는 21일을 기약하고 이 동안에 생과 사를 걸고 망신참법(亡身懺法 : 온 몸을 돌로 찧으며 수행하는 방법)을 하며 혈심(血心)으로 수도하였다. 얼마나 열심히 수도를 하였는지 그의 온몸의 살집이 터져 피가 흐르며 뼈가 허옇게 드러날 정도였다. 죽음과 같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율사는 굴하지 않고 여기서 모든 것을 끝내겠다는 집념으로 수도에 더욱 정진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만신창이가 된 율사 앞에 지장보살(地藏菩薩)이 현신(現身)하여 피투성이가 된 율사의 손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며 ‘참으로 지극한 정성이로구나. 그대의 정성에 감동하여 이것을 내리노라.’하면서 율사에게 가사(袈裟)와 바리때를 내렸다.

율사는 용기백배하여 또 한번 힘차게 수도에 몰입하였다. 내정한 21일째 되는 날 천안(天眼)이 환하게 열려 미륵불(彌勒佛)이 장엄한 모습으로 찬란한 광채에 휩싸여 도솔천의 무리를 거느리고 오시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드디어 그의 십수 년 간의 노력이 열매를 맺은 것이다. 미륵불은 율사에게 “장하도다. 대장부여! 계(戒)를 구하기 위하여 이같이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고 참회하다니 훌륭하도다.” 하고 말하면서 율사의 머리를 만지면서 간자(簡子)와 계본(戒本 : 불제자들이 지켜야 할 것을 적어놓은 글)을 주었다.

“지금 주는 간자는 내 새끼손가락 뼈로 만든 것으로 시각(始覺)과 본각(本覺)을 나타내는 것이니라. 8자 본각은 성불종자(成佛種子)를 뜻하며 9자 시각은 청정비법(淸淨秘法)을 나타내는 것이다. 너는 이 몸을 버리고 대국왕(大國王)의 몸을 받았다가 후에 도솔천에 나게 될 것이다.”

이 말을 마치고 미륵불은 현신할 때 처럼 다시 장엄하게 사라졌다.

쭦 금산사를 창건하다.

율사는 금산사(金山寺)를 창건하기 위하여 중생들의 정재(淨財 : 자선이나 불상을 건립하는데 바치는 재물)를 얻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전국에서 모은 쇠로 미륵불상(彌勒佛像)을 주조(鑄造)하기 시작하여 각고의 노력 끝에 결실을 보아 불상을 완성하게 되었다. 법사는 완성된 불상을 공사에 착수한 지 3년만에 금당(金堂)에 봉안(奉安)하였다. 율사는 금산사의 주지가 되었는데 금산사에서 소원을 빌면 묘하게도 성취되는 일이 많아서 이것이 널리 알려지자 전국에서 수많은 불제자들이 모여들었다.

율사는 금산사를 떠나서 새로운 절을 세우기 위하여 명소를 찾으려고 속리산(俗離山)으로 향하게 되었다. 가는 곳마다 율사의 영명이 널리 알려진터라 너도나도 율사의 고귀한 불언(佛言)을 들으려고 많은 사람들이 주위에 모여들었다. 율사는 이들을 모두 교화하며 길을 갔다. 속리산에 도착하여 길상초(吉祥草)가 수북이 난 동굴 옆에서 잠시 머문 후 다시 금강산으로 발걸음을 옮겨 강릉으로, 다시 강릉을 지나 금강산으로 가면서 중생을 교화했다. 금강산에 도착한 율사는 고성군(高城郡)에 위치한 금강산(金剛山)에 발연사(鉢淵寺)를 짓고는 7년 동안 머물면서 불법을 전하기에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기간 동안에 명주 지방에서 심한 흉년이 들어서 그곳 주민들은 나무 껍질과 풀뿌리로 연명해 나가는 처지였다. 율사는 이것을 안타깝게 여겨 명주해변에 다시 가서 불공을 올리고, 동해바다를 향해서 계법(戒法)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바다 속에서 수많은 물고기떼와 자라들이 해변가에 올라오니 그 양이 작은 동산을 이룰 정도였다. 그리하여 명주 지방의 주민들은 이것들은 식량으로 이용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의 사람들의 쌀과 맞바꾸어 흉년을 무사히 넘기게 되었다 한다. 어느 날 율사에게 대덕영심과 그의 두 명의 친구가 함께 찾아와 계법을 전수해 주기를 간절히 청하였다. 이에 율사는, 그들의 불법을 얻으려는 간절한 마음에 감동을 하여 스승인 순제법사에게 받은 두 권의 책과 가사와 바리를 그들에게 주고는 자신의 법통을 계승시켰다. 율사는 그들에게 “속리산으로 가서 길상초가 자라는 옆에 동굴 근처를 찾아서 그곳에 절을 세우고 이 불법을 널리 전하도록 하여라”고 대덕영심 등이 해야할 일을 일러 주었다. 그길로 대덕영심 일행은 율사에게서 책과 가사와 바리때를 공손히 받아가지고 율사가 가르쳐 준 곳에 절을 지어 길상초가 있는 곳이라 하여 길상사(吉祥寺)라 절명을 작성하고는 점찰법회(占察法會)를 열었다.

율사는 만년에 고향에 두고 온 아버지가 그리워져서 고향으로 가서 금강산 발연사로 부친을 모시고 와서 돌아가실 때까지 지극한 효성으로 봉양하였다. 율사는 자신의 죽을 날을 알고는 절 동쪽에 있는 거암(巨岩)위에 올라가서 마지막으로 기도를 한 후에 조용히 입적(入寂)을 하였다. 율사가 입적하자 그 제자들은 율사의 육신을 그대로 모셔두고 공양을 올리다가 세월이 흘러 뼈만 남게 되자 그것을 거두어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율사의 무덤에서는 소나무가 솟아 났는데, 수명이 다해 죽으면 다시 그 뿌리에서 다른 소나무가 자라나 계속하여 소나무가 생겨났다고 한다.

율사의 제자들로서는 대덕영심(大德永深)과 보종(寶宗), 진선(眞善), 석충(釋忠), 진해(鎭海), 신방(新房) 등이 있다.